Taito City Culture Guide Book, Tokyo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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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January 15, 2016

아사쿠사 연예홀


아사쿠사 연예홀



아사쿠사 프랑스좌 개관 풍경 (쇼와 26년(1951) 동양흥업 주식회사 제공)

아사쿠사 연예홀은 메이지 40년(1907)에 아사쿠사 6구에서 개업한 활동사진관 (현재의 영화관)의 삼우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삼우관은 다이쇼 시대에는 당시 유행하던 아사쿠사 오페라를 공연하는 주된 홀 중 하나로서 흥행했지만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쇼와 26년(1951)에 폐관하고 새롭게 ‘아사쿠사 프랑스좌'로 개관하면서 오랫동안 사랑 받아왔습니다. 이후 쇼와 39년(1964)에는 아사쿠사 프랑스좌가 증축되면서 4층, 5층에 아사쿠사 연예홀을 신설하고, 당시 아사쿠사에는 만담의 공연장이 없었기 때문에 만담 상설 공연장으로 개업하였습니다. 당시의 아사쿠사 연예홀에서는 왕년의 가츠라 분라쿠, 고콘테이 신쇼, 산유테이 엔쇼 등의 저명한 만담가와 함께 후에 만담 계를 이끌어 나갈 고콘테이 신쵸, 다테가와 단시, 산유테이 엔라쿠 등도 이곳에서 실력을 닦았습니다. 동양관, 그리고 아사쿠사 연예홀은 일본을 대표하는 수많은 예능인을 배출한 일본 예능의 거점으로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쇼와 46년(1971)에 동양 극장이 폐관됨에 따라 아사쿠사 연예홀은 1층으로 옮겨지고 많은 고객에게 사랑 받는 만담 중심의 공연장이 되었습니다. 헤세이 12년(2000) 설날에 아사쿠사 프랑스좌가 리뉴얼된 아사쿠사 동양관은 만담과, 콩트, 마술 등 만담 이외의 연예 공연장으로서, 늘 많은 단골 관람객 외에 젊은 팬, 그리고 해외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습니다.


아츠미 키요시 씨와 미시마 케이코 씨 (쇼와 20년대 (1950년대), 동양흥업 주식회사 제공)
아츠미 키요시는 어린 시절부터 도쿠가와 무세이의 만담이나 라쿠고를 즐겼으며, 후에 유랑 극단을 거쳐 프랑스좌에 들어가 나가토 이사무와 세키 케이로쿠, 아즈마 하치로 등과 함께 코미디언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TV에서 인기를 얻은 후에는 영화에도 진출해 「남자는 괴로워」시리즈로 주인공인 토라 역을 27년간 역임했습니다.


기타노 다케시 씨(중앙)과 현 아사쿠사 연예홀 회장인 마츠쿠라 씨(왼쪽) 등 직원 (동양흥업 주식회사 제공)
기타노 다케시(비트 다케시)는 대학 중퇴 후에 신주쿠 재즈 카페의 종업원 등을 거쳐, 아사쿠사 프랑스좌에 견습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보이로 일했습니다. 연예인이 되고자 집에서 나와 한동안 아사쿠사 프랑스좌의 다락방에 살면서 젠자(본무대에 앞선 견습 출연 혹은 그 급의 연예인)로 솜씨를 닦았습니다. 나중에 애드리브를 구사한 만담으로 인기를 얻은 투비트의 토대는 이곳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아사쿠사 연예홀은 연예, 예능의 중심지인 아사쿠사 6구에서 메이지, 다이쇼, 쇼와, 그리고 헤이세이의 역사와 함께 하며 일본의 연예계에서 큰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현재는 라쿠고(전통 만담) 중심의 연예홀, 그리고 만자이(주로 2인으로 이루어지는 만담), 만담, 콩트, 마술 등, 라쿠고 이외의 연예를 중심으로 한 동양관 (아사쿠사 연예홀 4층)이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습니다. (다이토구 아사쿠사 1-43-12)



아사쿠사 연예홀 홈페이지


동양관 홈페이지